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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록 부동산학 역사

경록은 우리나라 부동산교육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대표적 부동산전문교육기관입니다.
경록에는 부동산학을 만들고 발전시킨 역대급 1세대 부동산학 대학교수그룹에서부터 역대급 최고 · 최대 100여 명의 시험위원출신 대학교수 그룹이 참여해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경록의 교재, 강의 등의 프로그램은 비교대상이 없습니다. 경록에서 우리나라 학원, 대학 등 부동산 전문교육이 시작되었고, 경록은 새역사를 써가고 있습니다.

경록은 최초로 부동산학을 만들었습니다.
부동산학의 시조는 김영진(1929~1980) 교수입니다. ‘부동산학’이라는 주제(Key words)도, 부동산학의 수많은 학술용어와 이론들이 김영진, 경록,1957~현재의 저작 출판물입니다. 최초로 부동산에 학(Science)을 붙여 종합응용과학으로서 ‘부동산학’을 체계화했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인 예는 ‘공인중개사‘라는 키워드도 김영진의 저작물입니다.

경록은 동양 최초 부동산학회인 ‘한국부동산학회’를 창립했습니다.
김영진 교수는 1957년 경록의 전신인 신한부동산연구소를 설립, 최초 부동산학을 만드는 연구를 시작, 1967년 부동산학을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성과와 신한부동산연구소의 물적 · 인적 기반으로 1970년 1월 17일 오후 1:30 ‘한국부동산학회’를 창립하였습니다. 이것이 동양 최초의 부동산학의 모(母)학회입니다.

경록은 최초로 부동산학 대학교육과정을 창학케 했습니다.
경록의 전신 신한부동산연구소(김영진)의 연구성과와 물적 · 인적 기반으로 ‘한국부동산학회’ 창립,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최초의 부동산전공과정을 창학했습니다. 이어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등에서 부동산학 과목이 설강되고 이어 주요 대학들의 부동산학과 설립이 줄을 이어 오늘, 대학에서는 부동산학 학사, 석사, 박사가 배출되고 있습니다.

경록은 최초 공인중개사 · 주택관리사 · 감정평가사 제도 도입을 주도한 역사입니다.
김영진 교수는 1957년 부동산학의 연구와 함께 부동산전문자격을 연구하고, 낙후된 부동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1976년 공인중개사(내무부, 국회) · 주택관리사(부동산관리사), 1970년 감정평가사(토지평가사 : 건설부) 등을 최초 제안하고 주도적으로 노력해 오늘날 자격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경록은 지금도 교육사업, 학술사업 등으로 제도 발전에 강력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합니다.

경록은 업계 최초 부동산 학원교육시행▷ 업계 최초 라디오교육 시행▷ 업계 최초 TV교육 시행으로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 왔습니다.
경록은 또 다른 혁신을 거듭합니다. 이제 오프라인 부동산교육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도구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경록의 교육 프로그램은 누구나 따라만하면 특별한 암기 없이도 합격합니다.
온 종일 가사일 하시면서 경록인강을 반복해 듣고 합격하신 어머니,
온 종일 운전하시면서 라디오 대신 경록인강을 듣고 합격한 아버지,
경록인강과 교재를 따라해 3개월 만에 합격하신 73세 할아버지,
이것은 기적같지만 경록에서는 보통 경험하는 일들입니다.

경록은 업계 최초 온라인 혁신교육으로 더 좋은 미래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경록에서는 부동산에 부(不)자도 모르는 분들, 주부, 직장인, 자영업자, 학생, 교수, 연구가 등 10대에서 70대까지 모든 계층에서 처음 공부를 시작해서 합격하고 있습니다. 최단기 합격을 넘어, 초단기 합격자 명단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올립니다. 경록의 선택은 탁월한 선택입니다. 성공은 경록과 함께 시작됩니다.

경록 부동산학역사 더보기

1957. 신한부동산연구소 설립, ‘부동산학’을 만들었다
부동산학의 시조, 청년 김영진(1929~1980)은 한국전쟁 3년 후인 1957년 아직 전쟁잿더미 속, 국민소득 80달러, 그러나 우리나라도 미국 등 선진국처럼 개발(재건)되면 부동산문제가 가장 큰 국가적 문제 중의 하나가 될 것을 예측하고 경록의 전신인 신한부동산연구소를 설립, 부동산학 연구를 시작해 1967년 부동산학을 만들었다(김영진, 부동산의 학문적 체계화에 관한 연구논문,1967.).

1967~1970년 초까지도 ‘부동산학’을 저주했다. 그래도 ‘부동산학’은 만들어 졌다.
학술정보가 어두운 시대이었고, 변화를 두려워하는 시대이었다. 당시 학계 일부에서는 행정학을 정치학의 기생충학이라고 하거나, 경영학(상학)을 장사꾼 기술이라거나, 경제학의 기생충학이라고 비하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더욱이 ‘부동산’이라는 용어도 ‘복덕방’이라는 용어처럼 업신여겼다. ‘부동산학’을 연구한다고 하면 학계에서도 사회에서도 극히 소수를 빼고는 “복덕방학이냐“ 고 비아냥대거나 더 뒤에서는 ”사기꾼 학이냐“고 냉소했다. 그래도 김영진 한사람과 온 가족의 희생으로 부동산학은 만들어졌다. 김영진은 부동산학에 청춘도, 재산도, 생명도 다 바쳤다. 이때 부동산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대단한 신념, 사명의식이 절실했다.

1957~1967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의 부동산 문헌정보 조사· 분석 했다
김영진(金永鎭)의 부동산을 학문적으로 체계화 하려는 연구는 미국과 영국 등의 1900년대 부동산 문헌들에서부터 당시 최신 문헌까지를 조사 · 분석, 부동산학(Science)의 체계화를 시도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미국, 영국 등에까지 수개월이 소요되는 선박 우편과 선박편의 배송수단이 일반적이었다. 그때 문헌 · 정보 교류환경이란 매우 열악했지만 오늘날도 하기 어려운 조사들을 했다.

1900년대의 참고문헌 예
- 1900년 영국,미국의 문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표적 문헌을 모두 조사했다. 그 이후에 문헌의 예는 다음과 같다.
- Robinson, J. Watts, Robinsonian Interest Tables, Brookline, Mass., published by the author, 1909. (이하 생략) 등의 초기 문헌에서부터
- McMichael, Stanley L., How to Finance Real Estae, New York, Prentice-Hall, Inc., 1949.
- Schmutz, George L., The Appraisal Process, North Hollywood, Calif., the author, 4725 Ledge Ave., 1951. (이하 생략) 그리고
- Babcock, Henry A. Appraising Principles and Procedures, Richard D. Irwin, Inc., Homewood, Ill., Irwin-Dorsey Ltd., Nobleton, Ontario, 1968. 등에 이르기까지 약 70여 년간의 당시 대표적인 문헌들을 조사해 참고했다.

1957~’67. 영국, 미국대학 문헌정보교류 예
- 1957. 영국 Cambridge Univ. 등 20여 개 토지경제학 및 부동산 관련 학과의 대학들과 문헌정보교류를 했다.

1965.2. 미국 Michigan주립대학교 토지경제학부 교류 예
R. Barlowe 교수 등은 김영진 교수의 부동산학 연구를 격려함. R. Barlowe 교수는 미국 토지경제학의 창시자인 R. T. Ely 교수의 3대 요인 이론을 G. Wehrwein 교수를 통해 계승한 토지경제학의 중점식 접근(경제적 측면)을 시도했다. 그의 이론은 부동산을 경제적 측면, 법률적 측면, 기술적 측면 등의 모든 측면을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종합식 접근방법으로 부동산학을 정립한 김영진 교수에게 매우 유익한 교류가 되었다.

- 1967년 미국의 Ring, Alfred A. 교수는 김영진 교수의 종합식 접근방법에 이론과 종합응용과학으로서의 부동산학의 정립이 앞선 체계화라고 공감했다.

1957~ 미국, 영국 등의 부동산기관의 문헌정보교류 예
- 신한부동산연구소 설립과 함께 AIREA(Chicago) 등 미국의 부동산기관, 학자들의 문헌정보교류
- 영국왕립적산사협회(RICS), 미국부동산협회(NAR)와 그 산하기관, 미국평가사협회(ASA) ,미연방토지은행협회(FLBA) 등의 문헌과 정보,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부동산(토지)관련 대표적 학자들의 문헌과 교류 등이 연구의 기반이 되었다. 예를 들면 부동산(Real Estate) 어원은 ‘영국왕립적산사협회’ 등의 정의를 인용했다.

1967. 12. 최초로 부동산학 연구논문 완성, 1968. 2. ‘부동산학’ 발표했다
- 1967년 12월 부동산에 최초로 학(Science)을 붙여 '부동산학의 학문적 체계화에 관한 연구 논문을 완성했다. 1968년 2월 종합응용과학으로서의 부동산학을 발표하였다(김영진,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 김영진의 1957년 경록의 전신인 신한부동산연구소를 설립 후 10여 년간의 연구 결실이다.

부동산학은 부동산(토지)의 자연적 특성에서 착안했다.
부동산(토지)에는 첫째, 일반 재화와 달리 위치를 옮길 수도 없는 부동성(不動性)이 있다. 둘째, 절대량을 늘릴 수도, 생산할 수도, 수입할 수도 없는 부증성(不增性) 등이 있다. 부동산학은 부동산의 자연적 특성에서 착안했다. 부동산의 현상과 부동산의 활동 역시 부동산의 자연적 특성에서 비롯되어 일반재화의 현상과 달리 나타나기 때문이다.

부동산학은 종합응용과학으로 체계화 했다.
부동산학의 지도이념(가치)은 인간과 부동산과의 관계 개선에 있다. 부동산학의 연구대상은 모든 부동산현상과 모든 부동산활동이다. 부동산학의 (연구)접근방법은 부동산의 경제적 측면, 법률적 측면, 기술적 측면 등 부동산의 모든 측면들을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종합식 접근 방법이다. 부동산학은 종합응용과학이다. 따라서 부동산정책, 부동산실무, 부동산전문직 시험과목, 부동산교육 등도 종합식 접근방법에 따르게 되었다.

부동산에 학(Science)을 붙이는 논쟁을 이겨내고 부동산학을 체계화했다
(부동산학보 제2집, P.107.1979 참조).

김영진 교수 이론에 동의하는 예
- 1967년 미국의 링 알프레드 A. 교수는 김영진 교수의 종합식 접근방법에 이론과 종합응용과학으로서의 부동산학의 정립이 앞선 체계화라고 공감했다(앞에 기록 옮김).

- 1970년 초 미국의 C. W. 리치 교수는 부동산에 학(Science)을 붙여 연구하는 김영진 교수에 대해 “이제 부동산분야도 다른 경영분야와 동동한 위치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라는 내용을 한국부동산학회에 전달해 왔다.

김영진 교수 이론에 부정하는 예
반면 미국의 W.D.무어 교수는 “부동산에 학(Science)을 붙이는 점에 대하여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부동산에 관한 이론들은 많은 주변과학들의 이론을 모은 것이라고 생각되며 부동산학 스스로의 이론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다고 했다. 이 견해에 대해서 김영진 교수는 “행정학이나 회계학에서도 있었던 논쟁이다”고 일축했다.

부동산에 학(Science)을 개척한 김영진 교수
종합응용과학으로서 부동산학을 체계화해 성공했다. 김영진 교수는 부동산학이 능동적으로 개척하는 영역, 주변학문을 인용하는 영역, 응용해야 하는 영역을 체계화했다(사실 1964년까지 조사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부동산코스로 교육한 대학 240개, 대학원 16개가 석사 박사를 학위를 주고 있었다. 부동산학을 붙여야할 시기가 왔던 것이다).

1966~1968.3.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에 부동산학과 개설했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학의 대학교육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첫째, 교수요원 양성이 절실했고, 둘째, 부동산학적인 부동산정책을 펴기 위해서는 정책전문가 양성이 시급했다. 당시에는 석사학위를 취득하면 대학교수 취업이 가능했고, 정책기관의 행정관료가 석사학위를 취득하면 해당 정책부서에서 일하는 데 용이했다.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선정한 것은 행정학과와 교육행정학과가 있었기 때문이었고, 설립자인 이사장 유석창(劉錫昶) 박사의 부동산학에 대한 남다른 이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967.12. ~1980. 신문, 라디오, TV 등의 활동으로 부동산학의 저변을 확대했다.
신한부동산연구소의 설립에서 한국부동산학회 창립 후 활동에 이르기까지 김영진은 부동산, 토지, 주택, 도시 등에 관한 사설, 논설, 해설활동 등으로 부동산학의 저변을 넓혔다. 그 과정의 실무활동은 초대 조수 현 경록의 대표 이성태 박사가 담당했다.

1970.1.17. 동양 최초 부동산학회인 한국부동산학회 창립기반이 되었다.
동양 부동산학의 모(母)학회인 ‘한국부동산학회’는 김영진은 경록의 전신인 신한부동산연구소의 부동산학의 1957~1967까지의 연구 성과와 신한부동산연구소의 물적, 인적 기반으로 창립했다.

- 주 소 : 서울특별시 중구 당주동 72 당주빌딩(자체소유)
- 창립자/ 회장 : 김영진(건국대학교 교수, 신한부동산연구소 대표)
- 부회장 : 권영찬(건국대학교 교무처장/ 후일 건국대학교총장)
- 이 사 : 서돈각(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장/ 후일 동국대총장 등)
               김용한(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 교수/ 후일 건국대학교총장)
               김용태(국회의원/ 공화당 건설정책위원)
               박찬기(고려대학교 교수)
               김대용(법률신문사장)
               김상회(저널회장)
               김수엽(검사)
               안종윤(한양대학교 교수)
               이송만(한국감정원 부장)
               양제형(세종문화회관 관장)
               박재훈(건대 행정학 교수)
               송용철 (부동산학 전공)


- 김영진의 1970년대 후반부터의 주도적 역할로 일본에서 최초 ‘일본부동산학회’가 1984년 창립과 함께, 일본에서 처음으로 1985년 일본대학, 동양대학의 ‘부동산학과’가 신설되었다.

1970.3.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학 대학교재 ‘부동산학기초이론’ 제작
대학원 및 대학에서 부동산학을 강의하기 위해서 김영진 저, ‘부동산학기초이론’(1970. 등사판)를 발간했다. 당시에는 언론·출판사(社)가 허가제로 진입이 어려웠다. 모든 유인물은 정부검열 대상이었다. 그래서 신한부동산연구소가 아닌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김영진’으로 발간했다. 당시에는 계속 출판사 이름을 빌려 출판했다.

1970.3.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과에 부동산전공 신설했다.
- 김영진은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우선 부동산학과 신설의 전단계로 행정학과에 부동산전공을 신설해 부동산학원론, 부동산평가론, 부동산권리분석론, 부동산경영론, 부동산정책론 등을 담당했다. 이 역시 부동산학에 모든 것을 다 바친 김영진의 모든 것에서 나온 신한부동산연구소의 연구 성과와 물적· 인적 기반의 결정체이다.

- 당시의 교육행정환경이나 교육정책기관이 뭘 제안하면 적극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특히 사회가 터부시하는 부동산이라는 용어인 부동산학과는 거들 떠 보지도 않았다. 또한 사립대학교가 이런 과정을 신설할 재원의 여력도 없었다. 누군가의 희생적인 재원지출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김영진의 모든 것, ‘신한부동산연구소’의 물적 · 인적 지원은 눈물겨울 만큼 절대적인 것이었고 그것이 없이는 부동산학은 불가능했다.

1972.3.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에 부동산학과가 신설되었다.
- 이전까지는 부동산전공 행정학석사 학위과정과 연구과정이 있었으나 이로써 ‘부동산학석사’ 학위가 수여되게 되었다.

- 1970년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의 부동산전공과정 개설에 뒤이어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등의 부동산학 관련 과목신설 등이 이루어지고, 이어서 전국의 주요대학 등의 부동산학과 신설과 유사학과들이 줄을 이어 신설되었다. 후일 유사학과들은 거의 부동산학과로 전과되었고 지금은 부동산학 학사, 석사 박사과정의 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부동산학의 쾌거이며 경록은 여전히 미래지향적인 기능과 역할을 강력하게 수행하고 있다.

1972.7. 매일경재신문에 국내 최초 전문분야 연재인 ‘부동산학강의 연재’(61회)
부동산학의 저변학대와 전문자격제도 도입을 위해 매스컴활동이 절실했다. 당시 초대 조수인 현 경록대표 이성태 박사는 매스컴까지도 담당했다. 첫 번째 파격적 혁신은 ‘매일경제신문’이 국내매스컴 사상 최초로 전문분야인 ‘부동산학강좌’를 장기 연재한 것이다(당시 신문들은 소설연재가 주류였음). 부동산학의 연재로 매일경제신문의 구독은 폭발적으로 늘었고 ‘부동산학’도 널리 알려졌다. 감정평가사(토지평가사)에 이어 공인중개사 자격제도 도입의 사회적 공감대도 정부의 의지도 크게 향상시켰다.

1970.10.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권리분석론’ 제작 출판
- 10여 년간 연구해 오던 부동산학의 고유과목인 김영진 저 ‘부동산권리분석론(1970)을 제작· 출판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권리분석론‘이다.
- '부동산권리분석‘ 또는 ’권리분석‘이라는 주제어 자체도 김영진, 경록, 1957~현재의 저작 출판물이다.
- 이 교재는 대학원교재용으로 제작했다. 등사판이었다. 수요가 있을 수 없는 시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 김영진의 미완으로 남긴 연구의 여백은 지금도 경록에서 연구 중이다.

1970.10. 우리나라 최초 (한·미국제) 부동산세미나를 개최, ‘전국부동산학술발표대회’로 발전시켰다.
- 당시 세미나(Seminar)라는 용어도 생소했다. 신한부동산연구소는 ‘제1회 부동산 세미나’는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낙원동캠퍼스)에서 김영진 교수의 주도로 한국과 미국학자가 함께 하는 ‘한미부동산세미나’로 가졌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세미나’이자 ‘부동산국제세미나’이다.

- 제1회 부동산세미나는 오늘날 ‘전국부동산학술발표대회’로 발전하여, 가장 역사가 깊고 전국규모로 가장 큰 ‘전국부동산학술발표대회’로 발전했다. 연간 2회 이상 전국 주요대학교를 순회하며 열린다(한국부동산학회 홈페이지 참조).

- 매회마다 선발된 우수논문이 4편 이상 발표되고, 논문 1편당 12~15명(총 50~60여 명)의 대학교수들이 패널로 참가 열띤 토론을 해 논문의 완성도를 높여가고 첨단 학술정보를 공유한다.

- 경록은 여전히 미래지향적인 강력한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72.5. 최초의 ‘부동산학원론’ 제작출판
- 한국부동산학회의 김영진 저, 부동산학총서 시리즈로 기획해서 첫 번째 교재로 제작했다. 출판사는 전인식 교수께서 경영하는 ‘건설연구사’이었다.
- 이것이 부동산학의 최초 활판(조판)제작 교재이다. 건설연구사 전인식 교수는 김영진 교수의 후학(부동산학 1세대)이자 친구로서 부동산학총서 출판에 힘을 더해주었다. 늘 감사하고 있다.
- 부동산학 교재가 수요가 없는데 누가 출판해 주겠는가. 처음에는 건설연구사의 출판사 이름을 빌려 자비로 출판했다. 조판과 인쇄는 또 다른 업체에서 했다.
- 현 경록의 대표 이성태는 김영진의 조수로서 원고 정리하는 일, 보조, 책제작하는 일, 언론과 정책기관의 연락, 조율 등 일련의 일을 했다. 또 틈나면 신문, 방송 등 매스컴 교류를 하고, 교육하는 일을 해 소득을 얻기도 했다.

1972.6. 최초의 ‘부동산경영·정책론’ 제작출판과 역사의 변화 이끌었다.
당시에는 ‘부동산경영’이나 ‘부동산정책’이라는 용어도 생소했다. 도로건설, 주택건설 이런 토목중심의 용어가 지배했다. ‘부동산학’이 등장하면서 부동산가격· 평가·금융 ·보유세· 거래세 등의 경제적 측면, 부동산 사법 ·공법 · 세법 · 공시법 · 보상법 등의 법률적 측면, 도시· 토지· 주택 등의 기술적 측면 등을 종합적으로 접근한 ‘종합부동산정책’에 이르게 되었다.

1972.12. 국토이용관리법 제정과 공시지가, 감정평가사제도 등 정책지원과 교육 시행
한국부동산학회(학회장 김영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공시지가(지가고시), 감정평가사(토지평가사) 제도입활동과 함께 이성태는 부동산 및 감정평가사 교육사업 등을 더욱 활발히 했다. 신한부동산연구소의 부동산학 교육은 오늘날 우리나라 부동산교육의 초석이 되었고, 지금은 이름하여 경록은 부동산교육에 없어서는 안 될 대표적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973.2. 최초 ‘부동산평가론’ 제작출판과 얻은 것
- ‘부동산평가론’은 부동산학 고유과목의 하나이다. ‘부동산평가론’(김영진 저, 1973.)이 첫 대학 강의교재가 되었고 첫 평가사시험의 교재가 되었다.
- 이 교재가 우리나라의 감정평가 이론과 실무, 제도의 효시가 되었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 자비로 출판했다. 인쇄를 완성했으나 약속과 달리 제본직전에 제작비를 선불로 지불하라는 출판사의 요청에 난감했다.
- 이성태는 출판사에 “산부인과병원에서 산모가 아이를 낳았으나 의료비 비급하지 않는다고 아이를 보여주지 않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편지를 보냈다. 출판사 담당변호사가 편지를 받아보고 책을 인도해 주는 것이 옳다고 해서 책을 보내주었다.
- 필요한 곳에 책을 보냈고 회수된 돈으로 제작비를 지급했다. 경록에는 아직도 책의 표지가 덮이지 않은 견본 책이 그때를 말해주며 중요한 서고에 남아 있다.

1974.4. 첫 ‘토지평가사’시험 대비 독자적, 주도적 역할 수행
첫 토지평가사(감정평가사) 시험준비를 교육을 거의 독자적 · 주도적으로 시행해 첫 시험을 성공적으로 치러 오늘날의 감정평가사 제도로 발전되고 있다(첫 시험장소: 서울공고).

부동산교육의 불모지인 이 땅, 당시 우리나라의 감정평사제도를 김영진의 학자적 권위와 학회차원에서 독자적, 주도적으로 제안했고 교육했다. 시험시행을 “학회“차원에서 지원했다. 교재 연구(출판), 교육기능까지 수행하는 숨 가쁘고 힘겨운 역할과 기능을 수행했다. 한 분야의 시대의 역사를 만드는 일에 이름도 없이 쓰여졌다. 경록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1974.11.신탁은행원 재직자 교육 강의 지원

1975. 캐나다 부동산연구소 교류
캐나다 부동산연구소와 부동산학과 정책 등의 교육을 교류를 해왔다. 캐나다부동산연구소의 조셉 소장은 부동산의 종합식 접근방법에 의한 종합응용과학으로서의 부동산학에 찬사를 보냈다. 캐나다에서도 부동산을 토지, 주택, 법률, 경제, 기술을 각기 분산해서 여러 학과에서 연구하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당시 부동산 교육은 미국, 영국, 일본 한국도 수준 차이는 있지만 분산식 또는 중점식으로 교육한 다는 점은 다를 바 없었다.

1975.8. 한국감정원 재직자 교육강의지원

1976.4. 최초 ‘부동산학개론’ 제작출판
1972년 출판한 ‘부동산학원론’을 보정해서 부동산학개론으로 출간한 것이다. ‘부동산학원론보다는 더 진보했다. 그러나 종합식 접근방법에 의한 종합응용과학으로서의 부동산학은 변함이 없다. 역시 종합식 접근방법에 의해 정책 · 실무 · 시험의 체계화가 이루지고 있다. 세계 모든 부동산연구자들이나 주변학문의 학자들이 학의 원리를 소홀히 할 때 김영진이 종합식 접근방법에 의한종합응용과학으로서의부동산 학(Science)을 창안한 것이다(1957~1967). ’부동산학개론‘ 부동산학원론’이라는 키워드도 김영진의 저작물이다. 물론 그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새로운 용어들도 김영진과 경록의 저작 출판물이다.

1973.10~ 매일경제신문 제2회 부동산학강의 연재(19회)
- 1972년 제1회 부동산학강의 연재가 인기가 폭발했다. 그 후 독자들의 요청으로 매일경제는 제2회 부동산학강의 연재를 했다. 다만 필자의 시간 부족으로 지속할 수는 없었다.

- 1972년 6월, 제1회 부동산학강의 연재를 제안해 성공했다. 이성태는 매일경제신문사를 방문해 ‘부동산학강의 연재‘를 편집국장에게 제안했다. 편집국장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대신 총무국장과 논의 해보라고 했다. 이성태는 총무국장에게 부동산학이 뭔 지부터 설명해 결심을 얻었다. 그러나 연재할 모든 원고를 동시에 가져오라고 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낼 수 없었다. 2회분씩 주기로 하고 연재를 해 성공 했다. 그 후 우리사회는 부동산학 강의 수강 열풍이 일기 시작했다.

1973.11. ‘문답식 부동산평가론’
부동산평가 이론을 보다 알기 쉽게 하기위해 ‘문답식 부동산평가론’을 제작했다. 평가사 오석진 저, 김영진 감수이다. 자비출판을 했다. 수험생들과 수강생들의 필독서이다.

1973~5. MBC라디오 부동산학 방송강의
김영진은 신한부동산연구소의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부동산학의 저변확대를 위해 라디오 방송활동을 시행했다. 더욱 부동산학의 매력이 사회에 더 해 갔고, 공인중개사 등의 자격제도 도입, 시행의 공감대를 형성해 갔다.

1974.1.~12.중앙일보 부동산학강의 연재(69회)
매일경재신문의 ‘부동산학강의 연재’가 좋은 성과를 거두자 중앙일보에서도 69회를 연재했다. 다만 필자의 시간부족으로 어렵게 마감했다. 매일경제신문의 부동산학 강의 강의연재와 부동산 분석기는 오늘날의 부동산기사로 발전했다.

일련의 매스컴 활동은 부동산학 교육과 전문가양성, 종합부동산정책 제도화, 주먹구구식이었던 감정평가를 전문 ’부동산감정평가‘ 시대로 전환하고, 사기와 협잡으로 얼룩진 부동산소개업을 전문직 화하는 ‘공인중개사’제도 도입시행, 안전한 부동산관리를 위한 ‘주택관리사’시대, 과학적인 부동산투자와 경영, 안전한 재산관리 시대를 열자는 것이었다. 숨 가쁜 이런 노력은 지금 결실로 이루지고 있다.

1975.7.전국경제인연합회 전국기업가세미나 강의지원

1976.6~7. 내무부와 전국지방자치단체 공무원교육 강의지원

1975.8. 최초의 ‘부동산평가론 녹음강의’ 제작
영어나 소수 일본어 정도가 강의를 카세트테이프로 제작할 때였다. 전문분야를 카세트테이프에 담아 제작한 것은 부동산학의 저변확대를 위해 피나는 노력의 하나이다. 학회를 알릴 겸 ‘한국부동산학회’이름으로 내놓았다.

당시 사람들은 학회와 협회의 개념을 구분 못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심지어 대학교수들도 학회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경록은 최초로 부동산 강의실 교육 · 신문부동산강의 · 라디오부동산강의 · TV 부동산강좌에서 이제는 온라인전문 교육프로그램으로 대 전환해 혁신에 혁신을 거듭했다. 모두가 업계 최초의 일이다.

1979.2. ~, 최초의 공인중개사시험대비 부동산특별강좌 연수사업 주간
김영진이 1957년 ‘신한부동산연구소‘를 설립, 공인중개사제도, 감정평가사제도, 부동산관리사 제도 등을 꿈꾸어 왔고, 제도 도입을 위해 홀로 뛰었던 결실로 평가사제도로 1972년 국토이용관리법 제정으로 입법화 되었고, 또한 공인중개사제도 도입이 임박했다.

이때 이성태는 공인중개사 제도 도입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저변확대를 위해 연수사업을 주간(主幹)했다.
- 주관 : 한국부동산경영개발원
- 후원 : 한국부동산학회 / 매일경제신문/ 서울경제 신문
- 장소 : 대한체육회관 대회의실


‘매일경제신문’과 ‘서울경제신문’ 등은 부동산학 연재, 부동산분석기사 등으로 매우 신뢰하는 관계이었다. 다만 ‘학회가 연수사업에 후원하느냐’는 학회 회의에서의 한 인사의 물음에 김영진 학회장은 “나는 이성태 그와 그가 하는 일을 믿습니다. 그가 하는 일에 나는 피라도 빼내어 도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발전에 기여할 것입니다,”라고 말해 장내가 숙연해졌다는 후문이 있었다.

1980.3. ‘부동산학총론’ 등 위탁 발간
참 뼈아픈 이야기다. 민주화 운동, 5.18 등 아픈 정치적 · 사회적으로 비극이 일어나고 있었다. 잠시 김영진 교수와 이성태는 떨어져 있었다. 타사의 끈질긴 설득으로 김영진 저, ‘부동산학총론’ 등의 출판을 위탁했다. 이성태는 1980년 10월 김영진 교수의 작고와 함께 모든 출판권을 가져왔다.

1979.2. ‘부동산학범론’(不動産學汎論)
일본어판으로 동경법경원출판부(東京法經院出版部)에서 출판했다. 김영진 교수에게 일본학계가 부동산학이론을 전수하기 위해 출판을 요청했고, 일본대학과 동양대학에 처음 부동산학과설치를 위해 출판한 것이다. 경록에서 일본어 원판으로 1992.1.15. ‘부동산학’으로 출판되었다.

1984~‘85 일본부동산학회 창립, 일본 최초 대학부동산학과 개설
경록의 전신 신한부동산연구소의 부동산학을 만든 김영진은 부동산학연구성과로 1984년 일본 최초의 ‘일본부동산학회’ 창립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 또한 일본에서 최초로 대학부동산학과 신설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그 후 1985년 일본대학, 동양대학의 부동산학과가 처음 설치되었다.

한국전쟁의 잿더미도 청년 김영진의 꿈을 덮지는 못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3년 동안 일어난 한국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김영진은 부동산학을 만들 꿈을 꾸었다.

청년 김영진이 1957년 세운 경록의 전신 신한부동산연구소의 작은 시작은 오늘날 종합식 접근방법에 의한 종합응용과학으로서의 부동산학을 만들었고, 우리나라의 부동산의 역사를 바꾸었다. 부동산학교육역사를 새로 쓰고 , 부동산정책을 종합부동산정책 역사로 바꾸었다.

이로써 경록은 부동산학을 만들고 공인중개사, 주택관리사, 임대관리사, 감정평가사 등의 자격제도를 만들고 교육하고 제도발전에 기여하는 역사의 주역이 되었다.

이제 경록은 4차 산업시대를 이끌어, 지속가능한 미래지향적 기능과 역할을 업계와 학계에서 강력하게 수행해 가고 있다.



경록이 사랑받는 12가지 이유
1. 경록은 한국부동산교육 개척역사와 유일하게 함께 해 온 부동산전문교육기관이다.
경록은 김영진 박사의 부동산학 연구 시작(1957), 부동산학 발표(1967)와 교육 시작, 한국부동산학회 설립(1970)과 연구 · 교육활동 등의 개척정신과 교육사업을 직접 이어받았다.
특히 경록의 교육 서비스에는 공인중개사 · 주택관리사 · 감정평가사 제도 도입활동과 이들 시험의 시행 수년 전부터 국내 최초로 수행해온 부동산교육활동의 오랜 경험과 전문성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있다.
2.경록의 부동산전문교육은 정부 · 시험시행기관 · 시험을 리드하는 전문성이 있다.
경록은 시험을 리드하는 선제교육을 365일 계속한다. 이것이 당해 시험 직후 출제경향을 분석해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급급한 다른 교육기관들과 경록의 차이이며 경록의 리더의 지위이다.
더욱이 경록은 한국부동산학교육 개척역사를 함께 이끌며 유일하게 축적된 전문성과 한국 최고 최대 저자 · 교수 그룹이 응집되어 365일 24시간 연구하고 교육한다.
3. 경록은 상상을 뛰어 넘는 연속 또 연속된 독보적 정답률 신화가 계속되고 있다.
경록은 교재는 교재대로, 강의는 강의대로, 문제는 문제대로 시험에서 연속 독보적 정답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모든 교재, 모든 강의, 모든 수험자료를 하나로 묶어 정답률을 표시한 경우와 다르다)
4. 경록의 교수진 조건은 대학교수 조건보다도 더 까다롭다.
																		한 마디로 한국 최고 최대 저자 · 교수그룹이 최적임자를 지명한다.
경록의 교수는 풍부한 학식, 풍부한 부동산 실무경험, 풍부한 출제와 집필경험, 그리고 오랜 수험지도 경력이 갖춰진 전문가이다. 이런 경록교수 조건은 대학교수 조건보다도 더 까다롭다. 그 까닭은 부동산지식은 실무이해가 없으면 죽은 지식이고, 잘 가르칠 수도 없고,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문제해결능력이 없는 수험지도는 이미 실패한 것이기 때문이다. (경록에서는 풍부한 이론과 풍부한 실무경험, 풍부한 출제경험, 수험지도경험, 집필경험 등을 갖출 수 없는 젊은 나이의 초보 강사, 그리고 풍부한 부동산 실무경험 없이 단순지식만 전달하는 강의 기술자는 교수로 설 수 없다.)
5. 경록강좌는 시험을 리드하는 매뉴얼 기획강의이다.
																		TV뉴스보다도 더 쉽게 풀어 가는 대한민국 필수강의로 자리 잡았다.
시험장에 가보면 낙방의 두 번째 이유가 여러 해 학원을 다니고 방송강의도 듣고 인터넷강의도 들었으나 시험장에서 문제를 보면 답을 찾지 못해 낙방한 경우이다. 시험수준에 부적합한 강의를 반복해서 수강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 : '회계학 과목을 쉽게 강의하지 못하고, 부기수준으로 낮추어 강의했더니 강의가 쉽다고 수강생이 넘쳤다. 그러나 시험장에서 답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경록강의는 시험수준을 리드한다. 그러나 TV뉴스보다 더 쉽게 강의한다. 동시에 방대한 내용을 시험 수준과 시험영역으로 좁혀 최적화한 기획강의를 한다. 그래서 경록강의는 시험수준에 딱 맞고 불필요한 학습을 피하게 한다. 한마디로 경록강의는 철저히 매뉴얼에 의한 기획강의이다. 경록매뉴얼강의란 한국부동산학교육 개척역사와 유일하게 함께한 경록의 축적된 전문성과 경록의 한국 최고 · 최대 중진시험위원급 저자, 교수그룹이 조사, 분석해 시험에 딱 맞게 기획한 시험을 리드 하는 강의를 말한다. 경록매뉴얼강의는 전문의가 종합병원에서 종합수술계획서에 의해 수술하는 원리와 같다. 경록매뉴얼강의는 일반적인 강사가 소환하여 강의할 수 없는 한 차원 높은 영역이다. 그래서 경록강의는 포커스가 다르다.
6. 경록교재는 신문보다 이해하기 쉬운 교재!! 1회독 이상이 가장 쉬운 교재이다.
																		사람들은 경록교재를 '어떤 교육기관 어떤 책으로 공부했던지 반드시 읽어야 하는 대한민국 필독서'라고 한다.
시험장에 가보면 가장 많은 낙방의 첫 번째 이유가 '기본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워 1회독도 못하고 문제만 풀고 왔다'는 것이다. 기본서의 1회독 이상이 시험의 당락을 결정한다. 이 점에 착안해 경록은 신문보다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교재를 만들었다. 그래서 경록교재는 1회독 이상이 가장 쉬운 교재이다.특히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시험수준과 시험영역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설명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모방할 수 없는 경록의 한국부동산학교육 개척역사를 함께 이끌며 축적된 노하우와 경록의 한국 최고 최대 전문가그룹의 365일 24시간 노력한 연구성과이다. (경록교재는 수험자료를 모아놓거나 단순 요약한 교재, 즉 강의를 들어야 겨우 이해가 되는 일반 수험교재들과는 다르다.)
7. 경록교재는 1회독으로 3회독의 효과를 발휘한다.
																		문장으로, 그림으로 3~6번씩 반복되어 있다.
경록교재는 겉보기에 부피가 다른 교재들과 같다. 그러나 시험에 꼭 출제될 영역과 출제수준으로 좁혀진 알찬 내용이 3~6번씩 반복돼 있다. 그래서 공부할 양은 적고 반복학습이 쉽게 되어 학습 효과가 탁월하다. 한 마디로 경록교재는 1회독으로 2~3회독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특히 문장이나 말로 설명이 다될 수 없는 곳은 꼭 삽화로 해설했다. 책장만 넘겨봐도 다르다.
8. 경록 매뉴얼 강의는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반복학습되는 프로그램이다.
																		'보통 수험생이 강의를 듣고 3일 후면 20% 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경록매뉴얼 강의는 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
시험장에 가보면 낙방하는 세 번째 이유가 강의를 듣고 집에 오면 거의 잊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일이 수년간 반복되면서 계속 낙방하게 된다. 독일의 심리학자 에빙하우스의 이론에 의하면 보통 학습 후 3일이 지나면 20% 밖에 기억을 못한다고 한다. 여기서 착안한 경록매뉴얼 강의는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반복학습을 거듭해 놀라운 학습효과를 얻게 한다. 경록강좌는 업계 최초 1강당 10분으로 구성되어 반복학습이 매우 용이하다.

첫째, 경록강의는 언제 어디서나 수강이 가능한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과 접목하여 뉴미디어 교육을 업계 최초로 실현하였다. 이는 학원을 다니러 오고 가는 시간 정도이다. 출퇴근 차안에서, 집안 일을 하면서 누구나 하루 3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O.K!!

둘째, 경록강의 내용이 곧 시험내용이고, 강의 수준이 시험수준이다. 처음에는 서먹할 수 있어도 반복해 들으면 곧 익혀지도록 엮어졌다. 따라서 경록강의는 그냥 따라만 학습하면 되는 것이다. 이같은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반복학습만으로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없다.
9. 경록매뉴얼강의는 학습 집중도가 가장 높은 10분으로 끊어서 강의하고 본인 취향에 따라
																		20분, 30분, 40분 등으로 연이어 수강할 수 있다. 또 여기에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다.
수강 중 집중도가 가장 높은 시간이 10분 이하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래서 경록매뉴얼 강의는 업계 최초로 1개 강의 시간을 10분 이하로 했다. 단지 1강을 10분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10분의 내용을 무엇으로 어떻게 채우느냐는 또 다른 영역이다. 여기 경록매뉴얼강의는 부동산전문교육 60여년의 개척역사와 유일하게 함께 해오며 축적된 경록의 노하우와 경록의 한국 최고 · 최대 전문가그룹의 처방에 따라 채워진다. 특히 경록매뉴얼강의는 들으면 들을수록 더 듣고 싶어지고 학습흥미가 유발된다. 또한 강의를 듣고 들을수록 지식의 깊이가 더해진다. (이 점이 깊이가 낮아 다시 들을 때마다 불만족스러워 흥미가 떨어지는 다른 강의와 구별되는 점이다.)
10. 경록의 문제를 반복해 풀어보면 1문제를 1분 안에 풀 수 있다.
																		시험장에서 시간이 부족해서 문제를 못 풀고 나오는 일이 없다.
시험장에 가보면 낙방한 네 번째 이유는 시험장에서 시간이 부족해서 아는 문제도 풀지 못하고 나온 경우이다. 경록문제집은 시험수준을 압도하는 다양한 문제유형, 시험이 피해갈 수 없는 충분한 문제, 시험출제자도 참고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정통한 문제이다. 특히 1분에 1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전같은 문제이다. 한 마디로 경록문제를 풀지 않고는 수험장에 가지 말라는 것이 경험자들의 말이다.
11. 경록은 시험시행기관의 출제프로세스를 능가한 실전과 같은 출제프로세스가 있다.
경록은 유일하게 한국부동산학교육 개척역사와 함께 축적된 전문성을 기반으로 시험시행기관의 출제프로세스를 능가한 전문화된 출제프로세스에 따라 한국 최고 · 최대 중진 출제위원급 명저자· 교수그룹이 문제를 출제하고, 교재를 만들고, 한국 최고 · 최대 저자그룹에서 지명한 교수진이 강의한다.
12. 경록합격프로젝트는 '쉽다는 운전면허시험도 시험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해서는 낙방한다.'는 교훈에서 시작된다.
경록은 시험을 리드하는 합격프로젝트를 기획해 시행한다. 경록 합격프로젝트는 전통적으로 한국 부동산학교육 개척역사와 함께 해온 경록의 축적된 유일 전문성과 역사적으로 응집된 한국 최고 최대의 경록의 전문가 그룹이 이끈다. 경록합격프로젝트의 목표는 100%합격에 있다. 방대한 시험 내용을 시험에 맞게 디자인해서 시험을 리드하고, 1회독 이상을 가장 쉽게 하는 교재, 시험 수준을 압도하는 양질의 강의와 무한 반복학습, 1분에 1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실전문제, 철저한 개별학습 관리, 개별학습 질의응답, 개별수험자료 제공 등 시험을 리드하는 꼭 필요한 무한책임 서비스가 경록회원에게만 제공된다.

경록이 왜 이토록 놀라운 사랑을 받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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