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교육분야 브랜드 선호도 1위
경록, 우리나라 대표적
부동산전문교육기관이 되기까지
경록 대표 이성태

부동산학의 개척자 김영진 교수께서 부동산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신한부동산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를 시작한 1957년은 6.25전쟁 휴전 4년 후인 1957년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GNP)이 67달러였습니다. 세계 최하위였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과 눈물겨운 배고픔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때 “부동산학을 연구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미쳤다”고 반응했습니다. 더러는 “복덕방학“ ”사기꾼학“을 하려 하느냐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공인중개사 자격제도를 제안할 때에는 “사기꾼 면허증 주려 하느냐”고 반대했습니다.
또 학계 일각에서는 경영학(상학)을 경제학의 “기생충 학문”, “장사꾼 기술“이라고 업신여겼습니다. 행정학을 “정치학의 기생충학”이라 말할 정도이었습니다. 이들보다 후발 주자이고 인식도 더 안 좋은 ‘부동산학을 연구하고 교육하면서 학계와 사회의 굴절된 인식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웠겠는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이런 중에 굴하지 않고 전후 잿더미 속의 국토가 재건되면 부동산 문제가 국가적 문제가 될 것을 예측하고, 부동산 문제를 부동산학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부동산학을 연구하고 정립하였습니다. 이것이 부동산학의 정신이자 김영진 교수의 정신이고 전수된 경록의 정신입니다.

1970년 한국부동산학회를 설립하고 건국대학교행정대학원에 최초로 부동산학과를 설립해 교육한 것이 오늘날 부동산학 학사 · 석사 · 박사를 배출하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아울러 공인중개사, 주택관리사, 감정평가사, 임대관리사 등의 사회교육이 활발히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부동산정책도 부동산학적인 종합부동산정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만약 공시지가와 감정평가제도가 없었다면 오늘날 부동산정책은 실패했을 것입니다. 부동산정책의 실패는 은행들도 몇 번이고 파산케 했을 것입니다. 공인중개사제도가 없었다면 부동산 거래 사기 등의 범람하는 소송으로 검찰청과 법원과 교도소를 100배나 더 지어야 했을 것입니다. 주택관리사제도가 없었다면 아파트단지는 날마다 치고받는 싸움판이 됐을 것입니다. 이런 일은 모두 부동산학이 제안하고 자원해 해결된 몇 가지 사례일 뿐입니다. 부동산학이 공적 부동산활동, 시적 부동산활동을 근대화하여 개인과 국가의 운명을 바꾼 성과는 일개인이 목숨을 걸고 학문적으로 개척한 결과로서 기적적인 대사건입니다.

이처럼 김영진 교수의 신한부동산연구소 설립과 독자적인 부동산학의 연구, 부동산학의 정립과 교육, 정부의 종합부동산정책의 지원 그리고 감정평가사, 공인중개사, 주택관리사, 임대관리사 등 제도의 산파 역할과 전문가 양성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성과입니다.

경록은 『신한부동산연구소』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경록은 부동산학을 정립한 부동산학의 산실인 『신한부동산연구소』의 정신과 오랜 세월 축적된 전문성을 기반으로 부동산전문교육을 선도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부동산전문교육기관입니다.

평생을 김영진 교수님의 분신으로 살아온 저는 김영진 교수님의 못 다한 유업을 이끌어가는 일에 혼신을 다하고 있습니다. 『경록』의 경영과 『한국부동산학회』 및 『전국부동산학술발표대회』운영, 『부동산학보』발간 등의 유업을 기쁜 마음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동산학의 이념은 “인간과 부동산과의 관계 개선”에 있습니다. 이는 성서적 개념입니다. 모두를 신앙안에서 수행합니다. 그러나 늘 힘이 부족합니다. 여러분의 응원을 기다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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